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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한국은 특정한 하나의 트렌드가 인기를 끌면 그 뒤를 따르는 후발자들의 규모가 엄청나다. '무한도전'이 인기를 얻자 '1박2일''무한걸스''라인업' 등 수많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탄생했고 스타벅스로 커피가 인기를 얻자 커비빈, 엔젤리스커피, 일리, 탐엔탐스 등 수많은 커피 브랜드가 전국에 깔려버렸다. 야구 역시도 올림픽과 WBC의 인기를 등에 없고 서서히 TV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경인TV나 MBC-ESPN에서 꾸준히 야구 관련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왔지만 이것은 야구 선수들이나 팀, 관계자들이 만드는 진짜 야구인들의 이야기였고 최근 방영되는 '2009 외인구단'이나 '천하무적 야구단'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은 올해 초 WBC가 아니었다면 편성되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었다.



15년 전 이야기를 또 울궈먹는 야구 드라마..
2009 외인구단은 방영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제작 발표회를 했을때가 WBC의 바람을 타고 야구에 대한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고 오혜성 역의 윤태영의 경우 드라마를 위해 지난해 내내 사회인 야구에서 미친듯이 야구를 배웠다고 할정도로 배우들의 열정 또한 대단했다. 제작진은 10년전 공포의 외인구단과는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내겠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하지만 2009 외인구단은 10년 전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답습하며 최근에는 시청자들에게 실소를 안겨주는 스토리 진행을 보여줬다. 오혜성이 무인도로 떠나 지옥훈련을 하고 굼벵이를 먹으며 4년간 특급 선수가 되어 다시 나타난다는 과정은 (물속에서 스윙을 하고 줄에 매달려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장면은 대체 왜? 라는 의문만 남았다) 차라리 단체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서 팀 전원이 로저 클레멘스와 배리 본즈가 됐다는 스토리가 더 개연성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게다가 제작진이 야심차게 준비했다는 엄지와 현지의 혜성에 대한 러브 스토리는 2009년 30세 청년은 당최 이해하기 힘든 너무 지고지순한 (특히 동생 현지의 경우가 더욱..) 사랑 이야기였다. 10년전 이현세씨의 만화 스토리는 그대로 둔채 의미없고 하품나는 잔가지들만 잔뜩 늘어나 드라마에 대한 만족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결국 시청률은 7%로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들에게 참패했고 20부작이었던 드라마는 16회만에 쫑나는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 드라마가 '야구'라는 굴레 때문에 실패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야구라는 컨텐츠가 대중 문화로 나왔을 때 가지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20~40대 남성들에게만 어필할 수 있는 좁은 시장은 이해한다. 하지만 외인 구단의 준비과정이나 야구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제작사의 시도가 얼마나 많은 연구 끝에 이루어졌는지는 반드시 짚어봐야 할 것이다.


그래 올해는 2009년 이란다..

외인구단의 10년 만화로 인기를 끌었던 내용은 영화로 한번 가공한 것을 다시 드라마로 재가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는 일이었는지 이번 드라마의 실패를 통해 증명됐다. 국내에 스토리를 가진 야구 컨텐츠가 아무리 없었다고 외인구단을 또다시 녹차 울궈 마시듯이 재탕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정 마음에 드는 스토리가 없었다면 일본이나 미국의 컨텐츠에도 관심을 기울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최근 한국 드라마가 일본이나 미국드라마의 스토리를 가져와 재가공해 성공한 스토리는 얼마든지 있다. 하물며 올해 초 큰 인기를 얻은 꽃보다 남자도 일본 순정만화가 시초 아닌가? 야구가 없는 야구 드라마는 야구팬들에게도 버림받는 다는 사실도 증명됐다. 사실 이번 드라마에서 제대로 된 야구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캐릭터들의 사랑 이야기나 고뇌, 주변 이야기들로 드라마 내내 스토리는 지겹게 제자리를 뱅뱅 돌고만 있었다. 폭넓은 시청 계층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두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야구로만 승부하면 승산이 없으니 이것도 붙이고 저것도 붙이고.. 참 스토리는 10년전에 한번 성공한 적이 있는 외인구단 다시 갖다 쓰는게 확률이 높을거야' 라는 생각으로 이 드라마를 탄생시켰다면 현재 방송 미디어가 야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방법의 도전, 천하무적 야구단
KBS 해피 썬데이에서 1박2일의 전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천하무적 야구단도 큰 의미에서 보면 요즘 대세인 리얼 프로그램에 야구를 접목한 큰 의미는 없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출연진도 이하늘, 김창렬, 임창정 등 예능에서도 소외된 이들의 집합체로 방영 초기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천하무적 야구단은 무한 도전이라는 동시간대에 거목이 버티고 있음에도 1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나름 선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1-2년전쯤 야구 예능에 대한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그때는 한창 인기를 끈 날아라 슛돌이 처럼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어린 친구들을 모아놓고 연예인+프로선수들이 어울리는 형식의 프로그램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슛돌이가 월드컵이라는 대형 호재를 안고 있었기에 성공했지만 내가 생각한 프로그램은 정말 야구에 진짜 미친 PD가 아닌 이상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PD가 나타나 천하무적 야구단을 탄생시킨 것이다.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모아놨기에 시청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이들이 야구를 재밌게 즐기는구나라는 공감대를 얻었고 야구가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인식을 심으려는 노력도 프로그램 곳곳에서 느낄수 있었다. 중년의 아저씨들과 발야구를 하고 스님과 캐치볼을 하고, 물이 가득한 매트에서 슬라이딩을 하면서 진정한 '야구'의 가치와 재미를 TV 프로그램에 녹이는데 어느정도 성공했다. 이 모든 것이 야구에 대한 제작진의 이해와 준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라며 채널을 돌리곤 했던 나도 이제는 무한도전의 식상함에 KBS로 채널을 돌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물론 무한도전부터 채널을 켜놓고 돌리는 일이 아직은 많다) 첫 출발은 괜찮았던 천하무적 야구단이 롱런을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피나는 노력과 연구를 통해 다양한 소재 개발과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100% 정답이라 할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노력이 계속 이어진다면 '전국민이 야구하는 날을 만들겠다' 는 천하무적 야구단의 목표는 어쩌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H2는 야구소년들만 좋아하는 만화가 아니다

두 프로그램을 통해 본 성공과 실패의 차이점
결국 야구가 TV 미디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작진이 야구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야구의 의미를 제대로 알면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만들어갔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꼭 야구만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만화로 인기를 모았던 H2나 슬램덩크, 영화로 넘어가면 '코치카터'나 '그리디론 갱','제리 맥과이어' 등 주옥같은 스포츠 컨텐츠들은 얼마나 제작진이 스포츠에 대한 조예가 깊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잘 알수 있는 예가 될 것이다. 스포츠로 TV 미디어에서 성공하기 어렵기에 더욱 많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단순하게 드라마에 사랑이 없으면 안돼, 불운의 주인공은 꼭 있어야 되 라는 식의 편리한 접근은 제2의 외인구단과 같은 실패작만 만들어낼 뿐이다. 만약 제작진의 철학과 연구가 담긴 야구 드라마가 다시 태어난다면 막장이 판치는 드라마들을 대신해 칭찬으로 가득한 포스트로 블로그를 도배해 줄 것이다. 아무리 KBO에서 야구를 사랑해달라고 외치고 토론 프로그램에서 지루한 이야기를 떠드는 것보다는 단 1편의 성공한 드라마가, 단 1편의 TV 프로그램이 야구 팬을 만드는데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야구 자체가 재미있는 경기를 계속 보여준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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