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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가 공개됐다. 



아마 치퍼 존스와 블라디미르 게레로, 짐 토미가 무난하게 가입하고 트레버 호프만 정도가 아슬아슬하게 턱걸이 할 것으로 생각하며 쭉 후보자들 이름을 보다보니 묘한 느낌을 갖게 하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이제 선수가 아니니...)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멘스 
한 시즌 73개의 홈런을 터트리고 통산 762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남을 수 있었던 본즈와
통산 354승과 7번의 사이영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고의 우완 투수로 남을 수 있었던 클레멘스... 



"본즈는 테드 윌리엄스의 환생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 펠리페 알루



배리 본즈의 레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에피소드들처럼 믿기 힘든 아우라를 갖고 있다. 

고교시절 "나무 배트로도 홈런을 때릴수 있냐"란 스카우터의 말에 바로 그 다음 타석 나가 나무 배트로 홈런을 때렸다거나 애리조나 주립대학 시절 40야드 달리기를 주문 받자 워밍업 없이 테니스화를 신고 4.6초만에 주파한다던지 MLB 입성전부터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다. 성격은 이때부터 더러워서 82년 아버지 바비 본즈가 뛰는 팀이자 고향팀인 샌프란시스코가 2라운드에 지명했지만 7만 5천불의 계약금을 고집하다 5천불 차이로 틀어져 대학에 진학했고 실력으론 당연히 뽑혔어야할 84 LA 올림픽 대표에서도 제외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류의 천재형 캐릭터들에겐 늘 있는 성격 파탄 유전자는 뛰어난 야구 실력으로 가려지기에 충분했다. 

데뷔 2번째 시즌부터 호타준족의 상진인 20-20을 달성하고 30-30을 5번, 당시엔 역대 2번째였던 40-40도 1996년도에 달성했다.





그리고 2000년부턴 급작스런 벌크업을 통해 '지옥에서 온 악마'란 소리를 들을 정도의 파워를 장착한다. 그리고 2001년 무려 73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다. 
당시 마크 맥과이어가 갖고 있던 단일 시즌 최다 홈런인 70홈런을 넘어선 71호 홈런을 박찬호에게 빼았았는데, 당시 한국팬들 기분의 최악의 착찹함이었다. (그런데 그게 약물의 힘 덕분이었다니...)




본즈에게 느낀 상대팀 투수들의 공포가 어느정도였는지 알수 있는 장면을 소개한다. 
애리조나가 8-6으로 앞선 2사 만루에 본즈 타석. 2사 만루라 승부가 당연시 됐던 상황에서 벅 쇼월터 감독은 초유의 '밀어내기 볼넷'을 지시한다. 당시 중계진도 "믿을수 없다. 이건 역사적 사건이다"라며 호들갑을 떨었던게 당연한 상황. 

불행인지 다행인지 8-7이 된 이후 다음 타자가 우익수 플라이 아웃이 되며 애리조나는 승리를 지킬 수 있었다.



2004년 고의사구 120개라는 야구 기록의 파괴를 극한까지 보여주었다.
통산 고의사구 688개로 MLB 역사상 1위인데 2위인 알버트 푸홀스가 307개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점에서 본즈의 공포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포심은 명백한 본즈의 이기심에서 발동된 반칙에 의한 것이었다. 




1996년 40-40을 기록하고 1998년엔 통산 400홈런-400도루를 달성하며 야구 선수로 달성할 수 있는 경이적인 수준의 기록들을 달성했다. 하지만 1998년 MLB의 주인공은 배리 본즈가 아닌 마크 맥과이어였다. 

마크 맥과이어는 1998년 새미 소사와 역사적인 홈런 레이스를 펼쳤고 70호 홈런을 달성하며 세간의 인기와 주목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배리 본즈는 이미 맥과이어가 약물의 힘으로 70개의 홈런을 기록한 걸 알고 있었다. 당시까지 약국에서 영양제만 사다먹을정도로 깨끗하고 고결했던 본즈는 이런 불공평한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 

'Game of Shadows'(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나온 영화 이름이 아니다)에 따르면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본즈에게 있어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본즈는 맥과이어가 약쟁이임을 알고 있었다. 본즈는 건강식품 가게에서 기껏해야 단백질 쉐이크를 살 뿐이었다. 하지만 본즈는 맥과이어가 자신이 받았어야 할 인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걸 보고 결심을 굳혔다. 지금까지 말 그대로 쓰레기 취급해 온 그것, 약물을 복용하기로...


결과는 앞에 나열했다시피 본즈는 야구의 신이 됐고 결국 타락한 신이 되어 쫓겨나게 됐다. 

혹자들은 본즈가 스테로이드에 손을 댔을때 금지 약물이 아니었다라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약물 검사가 없었을 뿐이지 1991년 MLB는 스테로이드를 금지약물로 지정했고 2004년부터 약물 검사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결과가 비공개였지만 2004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의해 본즈의 약물 복용 사실이 특종으로 발표되며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발코 연구소를 조사하기 위해 열린 청문회에서 위증을 한 것까지 겹치면서(억지로 쥐어짜서 무죄를 받긴했지만) MLB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실망을 안겨준 본즈는 2007년 .276-28홈런-66타점을 기록하고도 쫓기듯 강제 은퇴를 당하게 됐다. 그 이후 한동안 야구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다가 2015년 마이애미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영입되며 다시 복귀했고 2017년엔 샌프란시스코의 특별 고문으로 친정팀으로 자리를 옮기게됐다. 



클레멘스도 차후에 한번 다루겠지만 배리 본즈처럼 엄청난 임팩트와 함께 추락한 선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내에서도 역대 최고의 영웅에서 '역대 최악의 비열한 약쟁이'란 평가를 받는 사람으로 극과 극의 자리를 오갔기 때문이다. 

배리 본즈와 마찬가지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마이크 피아자가 명예의 전당에 오르며 약쟁이들도 명전에 오를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긴 했지만 피아자는 약물 복용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반면 본즈는 끝까지 잡아떼다가 재판 방해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다시 야구계에 발을 붙이긴 했지만 아마도 명예의 전당에 오르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적어도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면 본즈의 기록엔 별도 표시를 해서라도 경각심을 알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정한 경쟁에 없는 스포츠는 팬들에게 버림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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