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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토론토는 창단 24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NBA 토론토 랩터스에 열광했다.

 

지난 5년간 3번의 우승을 달성했던 골든스테이트를 압박하며 코트를 지배한 카와이 레너드는 토론토는 물론이고 캐나다 전체를 대표하는 영웅으로 추앙을 받았다. 물론 오프시즌 LA 클리퍼스로 이적했지만 'We are the North'를 외치던 토론토와 캐나다 팬들은 레너드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레너드는 토론토 유니폼을 입고 NBA 역사에 여러 자취를 남겼다

그리고 2019년 12월 토론토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 구단인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정말 오랜만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며 새로운 스타를 영입했다. 2019 시즌 NL 사이영상 투표 2위이자 평균자책 1위를 기록했던 다저스의 류현진의 영입을 선언했다. 

토론토가 류현진을 선택한 의미

토론토는 최근 몇 년간 한국 MLB 팬들에게 악연이었다. 

 

2015년과 2016년 ALCS에서 추신수가 뛰던 텍사스를 격파했고 2016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선 김현수가 속한 볼티모어를 탈락시켰다. 이 경기에서 외야 수비를 하던 김현수에게 개념 없는 팬이 맥주캔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 2016년 시즌 도중 호세 바티스타와 오도어의 원펀치 맞대결도 잊어선 안된다. 

배트 플립이 과하면 주먹으로 돌아옵니다

2014~16년 짧은 전성기를 맞은 토론토는 2016년 우승에 올인하며 무리한 투자를 감행했다. 하지만 2016년 ALCS에서 캔자스시티에게 패했고 2017년은 과감하게 영입한 선수들 (예: 트로위츠키, 러셀 마틴)이 줄부상을 당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실패한다. 빠르게 리빌딩 버튼을 누른 토론토는 2018~19년 평균 70승에 그치며 유망주 수집에 나섰고 팀 페이롤도 1억 5천만 불 수준으로 건전성을 되찾았다. 

 

2년간 토론토의 팜엔 미래 슈퍼스타급으로 평가받는 유망주들이 다수 나타났다. 

슈퍼스타의 아들들인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와 보 비셋, 카반 비지오가 가능성을 보여줬고 쿠바 야구 영웅의 아들인 루드데스 구리엘도 2019시즌 .277-20홈런-50타점을 기록했다. 1~2년 더 경험을 쌓는다면 토론토 타선은 MLB 그 어떤 팀들보다 폭발적이고 매력적인 파괴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토론토의 미래 '비셋-비지오-게레로 주니어'

타선은 유망주들도 득실거리는 반면 투수진은 여전히 암울하다. T.J. 조이히와 제이콥 웨거스펙, 션 레이드-폴리 등이 기대를 모았지만 MLB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아론 산체스는 잦은 부상 때문에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2019 시즌 동안 무려 21명의 투수가 선발 마운드에 올랐을 정도. 

 

토론토는 투수 유망주의 성장을 기다리기보다는 타자 유망주들이 포텐을 터트릴 2~3년 뒤 우승을 준비하며 베테랑 선발투수들을 영입했다. 건강하다면 완벽한 2-3 선발로 뛸 수 있는 태너 로크를 영입했고 일본 프로야구 베테랑 투수인 야마구치 슌도 합류했다. 하지만 단기전 1선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고 류현진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벌써 팀 내 댑스 차트에 류현진은 1선발로 이름을 올렸고 "개막전 선발 등판 준비됐나요?"라는 문구를 앞세워 캐나다 내 한국 교민들에게 홍보를 시작했다. 명실공히 토론토 재건을 위한 마지막 조각으로 류현진을 선택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류현진 가족도 살뜰히 챙긴 토론토 구단

류현진이 토론토를 선택한 의미

토론토가 류현진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류현진 개인의 성적만 놓고 본다면 불안한 부분이 많다. 

 

류현진은 AL 동부지구 팀들에게 매우 약했다. 그나마 AL 동부지구 팀들 중 해볼 만한 팀이 토론토였지만 소속팀이 됐다. 토론토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과의 상대 전적은 5경기 평균자책점 6.04(28⅓이닝 19자책점)에 머물렀다. 예전 다저스 시절처럼 샌디에고와 같은 보약팀이 사라진 것은 아쉬운 부분.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드삭스는 강력한 타선을 무기로 MLB 내에서도 강력한 공격력이 장점인 팀들이다. 

 

토론토 로저스센터의 타자 친화적인 성향도 무시할 수 없다. 토론토 선발투수들은 시즌 내내 피홈런의 공포와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종합적인 부분에서 류현진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LA 에인절스가 가장 이상적인 목표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토론토도 2~3번째 티어로 평가할 수 있다. 

 

이전 소속팀인 다저스는 지난 몇 년간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며 '당장 우승'이 아니면 실패인 수준의 팀이 됐다. 우승에 도움이 되는 선수들에겐 극진한 대우를 해주지만, 우승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의 경우 냉철하게 쳐내거나 큰 정신적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2019시즌 막판 클레이튼 커쇼와 캔리 젠슨이 대표적인 경우다. 두 선수 모두 구위 저하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고 언론과 팬들의 집요한 플레셔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류현진 역시 지난 2년간 수술과 재활 때문에 편치 않은 심리 상태로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토론토는 전혀 다른 유형의 팀이다. 

물론 앞에 밝힌 것처럼 2~3년 뒤 우승을 노리는 팀이지만, 우승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팀이 아니다. 류현진이 1-2년 부진하더라도 기다려줄 수 있고, 젊은 선수들의 멘토 역할까지 감안했을 때 류현진의 몸값이 부담스러운 수준도 아니다. 게릿 콜이 연간 3천만 달러 시대를 연 상황에 전년도 방어율 1위 투수를 연간 2천만 달러로 계약한 것은 합리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류현진은 다저스 시절처럼 1경기 결과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더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팀이 필요했다. 경기 외적인 요소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에인절스나 샌디에고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토론토도 류현진이 원하는 많은 것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 

우리가 류현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

박찬호가 뛰던 1990년대 말과 현재 해외야구팬들의 가치나 눈높이는 많이 달라졌다. 박찬호가 텍사스에서 많은 돈을 받고도 부상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 마치 나라 망신이라 여기며 '먹튀' 소리를 자진해서 해대던 국내 언론들도 많았지만, 이젠 선수 개인의 성취와 국위 선양을 같은 맥락이라 여기는 사람은 많이 줄어들었다. 

 

류현진도 팬들의 만족도나 국위 선양이란 가치를 고민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다저스 시절처럼 리그를 압도하고 메인 매스컴을 장식하던 류현진의 모습은 당분간 찾기 힘들 수 있다. 투수들의 무덤이나 다름없는 AL 동부로의 이적과 미국이 아닌 캐나다 연고의 팀, 리빌딩 중인 팀 전력 등을 감안했을 때 류현진의 위치가 달라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류현진이 지난 몇 년간 좋은 성적을 올리며 팬들에게 보답했던 것처럼 이제 팬들도 류현진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팀의 긴 플랜 속에 차곡차곡 주류 무대로 나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류현진은 매우 영리한 선수고, 자신이 없었다면 선택하지도 않았을 길이다. 토론토 역시 캐나다 아이스하키의 전설적인 스타인 웨인 그레츠키의 등번호 99번을 선물하며 류현진에게 큰 믿음을 증명했다. 우리에겐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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