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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의 불안감을 노린 '공포 마케팅'을 SNS 상에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요즘 떠오르는 키워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공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퇴사' '창업' '사업' 등 직장 사춘기를 겪으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며, 몇 안 되는 성공 사례들을 포장해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뒤떨어지는 사람이 될 것이라 몰아간다. 

 

물론 사람은 어느 순간 변화와 도전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성급한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돌아오기도 한다. 어느 때보다 처세가 중요해진 세상에 평범한 신체조건을 가진 NBA 전 가드이자 현재는 골든스테이트 감독인 스티브 커의 생존법을 살펴보면 조그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슈퍼스타가 아니어도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8~90년대 생들이 가장 사랑하는 만화 중 하나인 슬램덩크는 농구를 소재로 고등학생 들의 꿈과 도전을 그린 현재 30~40대들의 로망과 같은 작품이다. 작중 주인공인 강백호가 속한 북산 고등학교가 펼치는 승부는 여러 명 에피소드들을 만들었는데, 단연 으뜸은 도내 예선에서 능남 고등학교와의 경기다. 

 

이미 1패를 기록 중인 북산은 이 경기에서 패할 경우 무조건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65:64로 앞선 경기 종료 1분 전, 북산은 노마크 찬스에서 '안경 선배' 권준호가 터트린 3점 슛으로 사실상 승리를 확정 짓는다. 

 

이 장면은 1993년 NBA 파이널 시카고 불스와 피닉스 선즈 6차전에 나온 존 팩슨의 3점 슛을 오마주한 장면이긴 하지만, 스티브 커 역시 권준호-존 팩슨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준 바 있다. 

 

시카고 불스와 유타 재즈가 맞붙은 1997년 NBA 파이널 6차전. 86-86으로 팽팽히 맞서던 경기 종료 28초 전, 시카고는 공격권을 가진 상태에서 작전 타임을 부른다. 필 잭슨 감독은 마지막 공격을 마이클 조던에 맡기는데, 이때 옆에서 듣던 백인 가드가 조던에게 소리친다. "내가 옆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여의치 않으면) 패스해줘!" 

 

경기는 재개됐고, 역시나 리그 최저 실점팀답게 유타의 강력한 수비는 스카티 피펜과 마이클 조던도 쩔쩔매는 상황이 된다. 조던이 공을 잡고 돌파를 시도하다가 탑에 비어있는 선수를 보고 패스를 연결한다. 아까 소리쳤던 백인 가드가 공을 잡고 지체 없이 슛을 시도했고, 이 슛은 그대로 결승득점으로 연결된다. 1997년 NBA 파이널 6경기에서 스티브 커가 기록한 26점 중 가장 임팩트 있는 득점이었다. 

 

글쎄요, 제가 조던을 또 구해줘야 했었던 것 같네요 - 6차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 정신없는 와중에 커는 자신 있게 조던에게 자신의 롤을 설명한다.

 

누군가는 스티브 커의 이 '한 방'을 운으로 치부할 수 있다. 커리어 대부분을 후보로 뛰었고 가장 잘 나갔던 시절 평균 득점도 8.6점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이란 슈퍼스타의 후광 속에 운 좋게 선수 경력을 이어가고, 정말 운이 좋아 우승 반지까지 가진 선수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티브 커는 운만 좋은 선수는 아니다. 시카고 불스에서 3번의 우승,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2번의 우승, 그리고 골든스테이트 감독으로 3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마이클 조던이나 르브론 제임스 등 리그 슈퍼스타들보다 더 많은 우승 반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성공은 운이 좋아 가능한 것이 아니다. 

 

시카고 왕조의 일원이 된 '전화 한 통'

스티브 커는 중동 전문가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났다. 애리조나 대학으로 진학해 나쁘지 않은 드리블-패스 능력과 당시에도 정확했던 장거리 슛 능력을 무기로 1986년 농구 월드컵 미국 대표팀에 뽑히기도 했고 1988년엔 애리조나 대학은 FINAL 4에 올렸다. 

 

개인 기량이나 신체 능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1988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25 픽으로 지명된다. 거의 마지막 선택을 받은 선수나 마찬가지였다. NBA 데뷔 이후에도 존재감은 미미했다. 처음 지명된 피닉스 선즈는 올스타 가드 케빈 존슨과 제프 호나섹, 댄 멀린, 에디 존슨 등 쟁쟁한 가드들이 넘치는 팀이었다. 26경기 출전에 그친 커는 89-90 시즌을 앞두고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된다. 

풋풋함이 돋보이는 클리블랜드 시절

클리블랜드에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스타 가드 마크 프라이스의 백업 가드로 경기당 20분 정도 기용됐지만, 92-93 시즌부턴 유망한 신예 가드 테렐 브랜든이 입단하며 그마저도 입지가 줄어들어 5~10분 뛰기도 힘들어진다. 시즌 도중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됐지만 성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시즌이 끝난 후 자유 계약 선수로 풀린다. 

 

말이 좋아 자유 계약이지 불러주는 팀이 없으면 그저 그런 농구 선수로 은퇴할 위기에 몰린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스티브 커에게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 전해진다. 시카고 불스의 백업 가드인 존 팩슨이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커는 바로 시카고 불스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트라이앵글 시스템에서 조던의 패스를 받아 정확한 슛을 넣어줄 가드가 필요하지 않냐"며 자신을 트라이 아웃할 것을 요청했다. 

 

불스는 커의 제의에 솔깃했지만 절실했던 커의 상황을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커에게 15만 불이란 헐값에 계약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전 연봉인 55만 불에서 1/3 이상 깎인 연봉이었다. 발끈할 법도 한 제안이지만 커는 이 요구를 선뜻 받아들인다. 자신에게 딜을 할 여유조차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선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타이밍이란 걸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타이밍은 정말 절묘했다. 불스가 커와 계약을 완료하고 1주일 뒤 마이클 조던이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1차 은퇴'를 선언했다. 만약 1주일 전에 조던이 은퇴를 선언했다면 불스는 커와 계약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시카고 감독이었던 필 잭슨은 준수한 패싱 감각과 뛰어난 슛 능력을 갖춘 커의 능력이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합하다는 것을 깨닫고 커에게 알맞은 롤을 만들어준다. 물론 시카고에서도 백업 가드에 외곽슛을 받아먹는 한정적인 역할이었지만 커는 이 롤을 100% 완벽하게 수행하며 시카고 불스의 시스템에 녹아든다. 

 

그리고 18개월 뒤 '황제' 마이클 조던이 복귀를 선언한다. 

끈질기게 이어진 커의 우승 반지 행보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는 2번째 '3 연속 우승'을 달성한 97-98 시즌 이후 조던이 두 번째 은퇴를 선언하며 왕조를 마감한다. 평균 7.5 득점-43.8%의 3점 슛 성공률을 기록한 커는 백업 가드를 구하는 많은 팀들의 러브콜을 받는다. 시카고 불스 왕조의 구성원들이 좋은 조건을 받으며 여러 팀으로 이적했는데, 커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선택한다. 

 

물론 177만 불을 받으며 시카고 시절보다 2배 가까이 몸값이 오르긴 했지만 시카고 프리미엄을 생각했을 때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샌안토니오는 1998년 드래프트에서 '신인 최대어'인 팀 던컨을 영입하며 데이비드 로빈슨과 함께 '트윈 타워'를 구축한 때였다. 트윈 타워 중심의 공격 전술에서 킥-아웃으로 나오는 패스를 받아줄 외곽 슈터가 절실할 것으로 예상하고 샌안토니오를 선택했다. 그리고 커의 선택은 이번에도 적중한다. 

 

샌안토니오에서도 98-99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포틀랜드에서 잠시 몸 담고 다시 돌아온 2002-03 시즌 샌안토니오 소속으로 다시 우승 반지를 차지한다. 

 

02-03 시즌 서부 지구 결승전에서 댈러스 매버릭스와 맞붙었는데 '사실상 결승전'이라 평가할 정도 두 팀의 전력은 막강했다. 3승 2패로 샌안토니오가 앞서있었지만 6차전은 댈러스의 공세에 고전했고 3쿼터 3분을 남기고 48-63으로 크게 뒤져있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샌안토니오의 반격이 시작된다. 무서운 기세로 댈러스를 몰아친 샌안토니오는 끝내 이 경기를 뒤집었다. 커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4개의 3점 슛을 모두 성공시켰는데 71-71로 맞선 4쿼터 6분 25초 전 결승 3점 슛을 터트리고 76-71로 앞선 4쿼터 5분 17초 전 승부에 쐐기를 박는 3점 슛을 터트린다. 

 

 

37살의 나이로 5번째 우승을 경험한 커는 은퇴를 선언한다. 

 

 

은퇴 후 NBC에서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며 NBA와 인연을 이어갔다. 선수 시절에도 유창한 인터뷰 실력을 보여줬던 커는 해설에서도 위트와 정확히 경기를 짚는 해설 능력을 바탕으로 인기를 이어갔다. 해설 이외에도 여러 NBA 프로그램에 얼굴을 보이며 방송 활동을 이어갔는데 마치 현 LG 트윈스 단장으로 활약 중인 차명석 단장이 해설위원 시절 보여줬던 '디스 해설'의 NBA 판이었다. 

 

쭈구리 신인이라 경기 중 사이드라인 구석에 앉아있는데, 경기 중인 조던이 다가와 "잘 봐" 하더니 사이드라인을 돌파해 덩크를 하더라고요. 제발 이 경기에 출전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커는 자신이 뛰던 애리조나 대학시절 감독인 루크 올슨을 통해 투싼 지역 출신 은행가인 로버트 사버를 만난다. 이 자리에서 커는 혁신적으로 바뀌던 현대 농구 트렌드와 자신의 농구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선수로 뛰며 필 잭슨-그렉 포포비치 등 명 감독과 함께했고, 마이클 조던-팀 던컨 등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하며 익힌 노하우, 농구 해설을 하며 제삼자의 시점으로 농구를 본 식견이 커의 통찰력을 키웠다.

 

몇 년 후 사버는 여러 투자자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피닉스 선즈를 인수하고, 커에게 팀 운영을 도와주길 제안한다. 당시 피닉스는 스테판 마베리와 앤퍼니 하더웨이 등 고비용 저효율 선수들을 처리하고 스티브 내쉬와 쿠에틴 리차드슨을 영입해 빠르고 공격적인 '런-앤-건' 농구의 꽃을 피우려는 팀이었다. 커가 좋아하는 농구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팀이었다. 팀 운영에 경험이 없는 커였지만 이 제안을 수락했고 운영 컨설턴트로 2004년부터 3년간 활동하고 2007년부턴 운영 실무 전반을 맡는 단장에 올라 피닉스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다. 

 

MVP아 함께했지만 우승을 함께하진 못했다

 

스티브 내쉬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앞세운 피닉스의 공격 농구는 우승을 따내진 못했지만 커가 단장을 맡은 3년간 2차례 플레이오프 올랐고 그중 한 번은 서부 지구 결승까지 올라 코비 브라이언트의 레이커스에게 2승 4패로 아깝게 물러난 시즌이었다. 

 

또 한 번의 갈림길에 서다

2009-10 시즌 레이커스에게 패한 이후 피닉스는 내쉬와 스타더마이어의 노쇠화 우려 속에 리빌딩을 선택할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팀 내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구단주인 로버트 사버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의 재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며 현재 체제를 유지하는데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팀이 긴 리빌딩 구간에 빠질 것을 예견한 커는 피닉스 단장을 사임하고 다시 해설자로 돌아간다. 성적 하락이 뻔한 상황에 굳이 단장직에 연연하지 않았다. 

 

피닉스는 2009-10 시즌을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를 경험하지 못하고 10년째 리빌딩을 진행 중이다.

 

6년 만에 방송계로 돌아왔지만 커는 여전한 입담과 재치를 무기로 NBA TNT 방송에서 활약했다. 소속은 여전히 피닉스 선즈 소속이었지만 일종의 '고문'같은 역할이라 실무에 거의 개입하지 않고 방송일에 전념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야인으로 4년의 시간을 보내던 커에게 다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커는 해설을 하면서도 현업 복귀를 강력하게 희망하는 코멘트를 자주 남겼다. 실제로 농구단 운영에 대한 여러 제의가 들어왔지만, 커가 생각했던 기준에 맞지 않은 제안들이었다. 커의 기준은 명확했다.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빠른 패싱 농구와 정확한 점퍼'가 기본이 된 전술 그리고 피닉스 말기 사버에게 휘둘린 것과 같이 팀 보드진의 기조가 강하지 않은 팀을 원했다. 

 

드디어 2014년 커에게 매력적인 제안이 찾아온다. 그것도 두 군데에서 말이다. 

 

먼저 제안한 쪽은 뉴욕 닉스였다. 불스 시절 은사였던 필 잭슨이 뉴욕 닉스 사장에 임명됐고 새로운 뉴욕 닉스의 미래를 만들 감독으로 스티브 커를 찾았다. 잭슨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뉴욕의 리빌딩을 이끌 절호의 기회였다. 커의 마음도 뉴욕 닉스 감독 취임으로 기울어지던 순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감독이었던 마크 잭슨이 경질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마크 잭슨은 클레이 톰슨과 스테픈 커리라는 미래가 창창한 가드들을 중심으로 골든스테이트 리빌딩의 기초를 잘 닦았지만, 코치진-보드진과 불화가 겹치면서 2013-14 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 이후 경질된다. 골든스테이트 역시 리빌딩을 이끌 감독으로 스티브 커를 주목했다. 커는 큰 고민 없이 은사가 있는 뉴욕 닉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골든스테이트와 5년 계약을 체결한다. 

 

자신에게 실망하는 누군가가 있었겠지만,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명확하다면 그곳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골든스테이트에서 보여준 스티브 커의 진가

스티브 커는 골든스테이트에 어떤 유형의 감독이 필요한지 정말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골든스테이트는 이미 잘 짜여진 팀 구성에 열정적인 프런트가 있었고, 무엇보다 미래의 슈퍼스타 스테픈 커리가 있었다. 커리는 어린 나이에도 이미 골든스테이트 팀 리더였다. 

 

커는 먼저 커리에게 다가가 교감하며 커리가 원하는 것(챔피언 트로피)을 파악하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올바른 비전을 제시했다. 선수 시절부터 마이클 조던, 팀 던컨 등 슈퍼스타와 교감했던 커의 경험은 커리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커리가 커를 인정하자 나머지 팀 동료들도 잭슨 감독을 빠르게 잊고 커를 인정한다. 커는 커리 뿐 아니라 팀 내 후보 선수들과도 교감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캐치해 최대한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팀을 이끌었다. 선수들은 거친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 역량을 강화하며 더 나은 성공(돈)을 원했고, 이궈달라나 리빙스턴 같은 베테랑들은 '챔피언 트로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선수였다. 

 

구성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 목표를 하나로 모은 커는 골든스테이트에서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커가 감독으로 재임한 5 시즌 동안 모두 NBA 파이널에 올랐고 3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2015-16 시즌엔 커가 선수로 뛰던 시카고 불스가 기록한 NBA 최다승인 71승을 경신하며 73승을 기록했다. 

 

2010년 NBA의 역사는 골든스테이트를 빼곤 설명할 수 없는 찬란한 왕조를 열었다. 

 

미래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어떤 상태인가에 대한 정확한 자각 

191cm의 어중간한 키와 뒤떨어지는 운동능력은 농구 선수로 성공하기 힘든 요건들이다. 하지만 NBA 역대 3점 슛 성공률 1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정확한 외곽슛을 갖고 있었고 이 장점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팀을 정확히 파악했다. "조던의 패스를 받아 정확한 슛을 넣어줄 가드가 필요하지 않냐"는 제안을 넣기까지 커는 자신의 상황과 리그의 판도를 계속 바라보며 고민했을 것이다.

 

나의 비전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곳인가? 

93년 올랜도와 계약이 끝난 뒤 NBA에서 낙오된 여느 농구 선수들처럼 당장의 돈을 바라고 유럽농구 리그로 향했다면, 2014년 당장의 큰돈과 필 잭슨이란 은사의 줄만 믿고 뉴욕 닉스를 택했다면 8개의 우승반지는 택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비전과 부합하는 곳이 맞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불스의 최저 연봉도 마다하지 않았고, 닉스의 거금을 뿌리치고 골든스테이트로 향할 수 있는 신념이 있었다. 피닉스에서 단장직을 그만 둘 때도 피닉스에 비전이 없어졌음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었다. 

 

기본적인 베이스는 실력과 겸손함 

영리한 선택과 운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 커가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은 맞지만 매우 겸손한 사람이기도 했다. 선수-해설가-단장-감독 등 어느 위치에 있던 자신을 내세우기보단 먼저 다가가 교감하고 자신의 구성원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이를 주력하는데 우선했다. 조직의 리더건 말단 직원이건 자신의 니즈를 위해 힘쓰는 사람에겐 호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농구 선수 모두가 마이클 조던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엔 모든 사람들이 성공한 사업가가 되거나 명망 높은 리더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세상은 정신없이 빠르게 변하며 성공에 대한 기준도 다양해지고 있다. 

 

스티브 커 감독이 믿을 수 없는 성공신화를 일궜지만, 그 과정에서 커가 내려야 했던 결단의 순간들이나 고민의 순간들은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입시킬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다. 고민의 크기나 얻을 수 있는 성과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커의 기준과 비전에 대한 신념은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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