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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이 토론토로 이적하면서 등번호 99번을 유지했다. 다저스 시절에도 '99번' 등번호는 특이하다 정도였지만, 캐나다에서 '99번' 등번호는 정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캐나다의 전설이자 99번을 대표하는 선수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까는 밑밥들이니 너무 심각하게 이번 시리즈를 볼 필요는 없다.

 

No. 11번 - 마크 메시에

웨인 그레츠키와 함께 에드먼턴 오일러스 왕조를 이끌고 뉴욕 레인저스에게 54년 만에 스탠리컵을 안긴 주인공. 별명이 '메시아'일 정도로 아이스하키에서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 특히 93-94 시즌 동부지구 결승에서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뒤진 6차전 3피리어드에 보여준 놀라운 역전골과 해트트릭은 전설로 평가받는다. 6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2번의 MVP를 따냈다. NHL 명예의 전당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No. 12번 - 톰 브래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2000년대 최강의 NFL 팀으로 끌어올린 주인공. 2001년 우승, 2004~05 연속 우승 이후 10년간 불운에 시달렸지만, 2014, 2016, 2018년 우승을 추가하며 조 몬태나와 함께 가장 위대한 쿼터백으로 손꼽히는 수준이 됐다. 특히 2016년 슈퍼볼에선 3쿼터 중반까지 3-28로 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6번의 슈퍼볼 우승-3번의 MVP에 선정됐고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를 꼽을 때 항상 후보로 언급되는 슈퍼스타 중 한 명이다. 40세 중반까지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투혼을 불태우고 있다. 

 

No. 13번 - 월트 체임버린

한 경기 100득점을 기록한 것으로도 유명한 농구 괴물. 216cm의 키에 믿기지 않은 운동 능력과 센스를 겸비해 믿기지 않은 기록을 많이 남겼다. 자유투가 유일한 약점이었는데 자유투가 하도 들어가지 않자 자유투 라인에서 제자리 점프로 덩크를 시도했다는 '탈인간급'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체임버린의 믿기지 않은 운동 능력과 힘은 검색을 통해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빌 러셀의 보스턴 셀틱스에 막혀 단 2번의 우승에 그쳤지만 워낙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어 ESPN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NBA 선수 순위에선 빌 러셀보다 앞선 5위에 올랐다. 

 

No. 14번 - 요한 크루이프

현대 축구의 전술을 재정립한 '토털사커'의 창시자이자 창조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지금까지 많은 축구 선수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국가대표로는 유로와 월드컵에서 우승 트로피가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아약스와 바르셀로나를 거치며 눈부신 성과물들을 남겼다. 

 

아약스 소속으로 70년부터 73년까지 유로피언컵(현재 챔피언스리그) 연패를 달성했고, 71-72시즌 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 유로피언 컵 우승을 달성하며 네덜란드 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73년엔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한차례 팀 우승을 안겼다. 선수로 바르셀로나에 대한 기여도는 기대보다 낮았지만 감독으로 돌아온 이후 4번의 우승을 안겼고 한차례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선물했다. 

 

크루이프 턴이라 불리는 기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창조적인 플레이의 단면을 잘 알 수 있는 기술이다.

 

No. 15번 - 빈스 카터

77년생으로 2020년 기준 43살의 나이지만, 여전히 엄청난 체공시간과 강력한 덩크를 선보이는 노익장 스타. 지금이야 뛰어난 노장으로 평가받지만 마이클 조던 이후 NBA가 가장 사랑했던 덩커이자 코비 브라이언트와 함께 조던의 후계자로 가장 근접했던 선수였다. 

 

98-99시즌 직장 폐쇄로 인기에 치명타를 입은 NBA에 구세주처럼 등장한 신인으로 주목을 받았고, 2000년 NBA 올스타전 덩크 콘테스트에서 보여준 포퍼먼스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덩크 콘테스트로 평가받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덩크 콘테스트가 식상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실제로 폐지까지 됐던 마당에 카터의 엄청난 퍼포먼스 덕에 덩크 콘테스트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포퍼먼스뿐 아니라 경기력도 뛰어났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218cm의 센터 프레드릭 와이즈를 뛰어넘는 초인적인 덩크를 터트리며 미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No. 16번 - 조 몬태나

역대 최고의 쿼터백으로 평가받고 있는 전설적인 선수. 1980년대 4번의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포티나이너즈가 첫 우승을 차지만 1981년 NFC 챔피언십에서 경기 종료 51초를 남기고 상대 수비수 3명이 달라붙는 상황에 터치다운을 성공시킨 플레이는 몬태나의 냉철한 판단력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슈퍼볼에 4번 출전해 모두 우승을 차지했고 4경기 동안 단 1번도 인터셉션(가로채기)을 당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NFL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강심장 플레이어였다.

 

No. 17번 - 야리 쿠리

핀란드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 NHL의 슈퍼스타. 웨인 그레츠키와 함께 아이스하키의 '리즈 시절'이라 평가받는 에드먼턴 오일러스에서 5번의 스탠리컵 주인공이 됐고 통산 601골-797어시스트로 1,398 득점 포인트를 기록했다.

 

특히 플레이오프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는데 1985년엔 NHL 플레이오프 최다골 타이기록은 19골을 기록했다.

 

No. 18번 - 페이튼 매닝

아버지 아치 매닝도 NFL 쿼터백으로 뛰었고 동생 일라이 매닝도 뉴욕 자이언츠의 쿼터백으로 뛰는 등 풋볼 쿼터백 집안이다. 운동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탁월한 예측력과 놀라운 전술 소화 능력, 흔들리지 않는 멘털의 주인공으로 톰 브래디와 함께 2000년대를 대표하는 쿼터백으로 손꼽힌다. 

 

2006년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소속으로 첫 슈퍼볼을 얻었고 2015년 덴버 브롱코스 소속으로 마지막 슈퍼볼 챔피언십을 얻은 뒤 은퇴를 선언했다. 5번의 NFL MVP를 수상했으며 단일 시즌 최다 패싱 터치다운-패싱 야드 신기록을 갖고 있고 단일 경이 최다 패싱 터치다운 타이기록의 소유자이다.

 

No. 19번 - 토니 그윈

테드 윌리엄스 이후 4할 타율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언급됐던 위대한 타자. 실제로 1994년 .394를 기록했지만 MLB 노조가 파업을 선언하는 바람에 시즌이 도중 마감되면서 전설적인 기록 달성에 실패했다. 15년 연속 3할을 넘겼고 5년 연속 .350 이상을 기록했으며, 통산 타율 .338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테드 윌리엄스 다음으로 높은 기록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타격 능력을 갖고 있기도 했지만 꾸준한 연구와 연습이 뒷받침됐던 노력하는 천재였다. 

 

No. 20번 - 홍명보

해외축구에서 20번은 주전에서 밀려난 노장이거나 이제 막 팀에 합류한 유망주들이 주로 다는 번호였지만 대한민국에선 수비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등번호 중 하나다. 바로 2002년 월드컵 브론즈볼의 주인공이자 대한민국 축구 전설인 홍명보가 애용했던 등번호였다. 홍명보는 90년부터 2002년까지 대한민국 대표팀 부동의 수비수로 활약하며 총 136경기에 출전했다. 홍명보가 그라운드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은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꼈다. 

 

감독으로 2012년 올림픽 동메달을 안기기도 했지만 2014년 월드컵 실패와 함께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세르비아의 플레이메이커 데얀 스탄코비치도 등번호 20번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선수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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